생명도시를 실현하는 인성교육

박재순l승인2015.04.02l수정2015.04.02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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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흥(始興)과 생명(生命)

시흥(始興)이란 도시 이름이 생명을 가리킨다. 시흥은 ‘흥이 시작된다, 흥이 일어난다.’는 말이다. 생명을 제대로 살면 흥이 나고 신이 나는 것이다. ‘새오름’도 생명의 본성을 나타낸다. 생명은 ‘새로 솟아오르는’ 것이고 ‘새처럼 솟아오르는’ 것이다. 시흥이란 도시, 새오름이란 모임이 예사롭지 않다.

환경도시나 생태도시라고 하지 않고 생명도시라고 한 것도 큰 의미가 있다. 환경은 인간생활의 주변여건을 말하는 것이니 환경을 바꿔도 인간의 삶 생명 자체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생태는 생명의 존재원리와 연결망을 나타낸다. 생태도시를 이룬다는 것은 생명에 적합한 생명다운 도시를 만든다는 말이다. 생명도시는 다르다. 생명(生命)은 말 그대로 생의 명령과 뜻을 나타낸다. 생의 사명과 천명, 하늘의 뜻을 담은 말이다. 생명도시를 이룬다는 것은 생명 속에 담긴 하늘의 명령과 뜻을 실현한다는 말이다.

생명은 참으로 묘한 것이다. 생명은 물질에서 시작되고 물질(몸) 안에 있는 것이지만 물질세계에는 없는 새로운 존재의 차원을 지니고 있다. 생명은 물질은 아닌,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묘한 존재의 세계, 하늘을 닮은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세계다. 생명은 물질과 다르게 고유한 본성과 목적을 가지고 있다. 생명은 스스로 하는 주체를 가진 것이다. 물질이나 기계는 밖의 힘으로 움직인다. 물질과 기계에는 자발적 주체성과 헌신성이 없다. 그러나 생명은 스스로 하는 자발적 주체성을 가지고 있다. 존재와 활동의 원인과 까닭을 제 속에 가진 것이 생명이다. 원인과 결과를 밖에서 따질 수 없다. 또 생명은 전체가 하나로 이어져 있다. 물질은 갈라도 물질의 본성을 잃지 않고 기계는 부품을 분해해도 기계다. 생명은 쪼개거나 분해하면 더 이상 생명이 아니다.

생명은 내적으로도 하나로 통일된 존재이고 밖으로도 전체 생명과 하나로 이어진 것이다. 생명은 주체이면서 전체 하나로 통일된 것이다. 주체와 전체의 일치와 통일이 생명의 본성과 목적이다. 주체의 깊이와 자유에서 전체의 하나 됨에 이르는 것이 생명의 본성과 목적이다. 내가 나답게 되고 너와 소통하고 하나로 되는 것이 생명의 본성이고 목적이다. 이것이 바로 하늘의 명령 천명이고 하늘의 뜻이다. 하늘이 생명에 부여한 사명과 목적이다. 하늘은 한없는 주체의 깊이와 자유를 나타내고 나눌 수 없는 전체 하나를 나타낸다. 하늘은 주체의 자유로운 깊이에서 전체의 하나 됨에 이르는 자리다.

박테리아와 아메바의 꿈틀거림 속에도 하늘의 뜻이 깃들어 있어서 사람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하늘의 뜻은 생명의 주체가 더욱 깊고 자유로워지고 전체가 하나로 되는 것이다. 생명진화 과정은 땅의 물질에서 하늘의 영에로 올라가는 사다리다. 물질에서 생명의 세계가 열렸고 생명에서 감정과 의식의 세계가 열렸고 감정과 의식에서 지성의 세계가 열리고 지성에서 영성과 신성의 세계가 열린다. 이것은 주체가 더욱 깊어지고 전체가 더욱 크게 하나로 되는 과정이다. 사람마다 속에 생명진화의 사다리가 있다. 사람은 하늘을 향해 솟아올라가는 것이요 올라가면 신이 나고 흥이 나는 것이다. 저마다 제 삶을 살면 시흥(始興)이 이루어진다.

 

2 자연생명과 산업도시

‘생명도시’란 말에는 갈등과 긴장이 있다. 도시는 돈과 기술이 지배하는 세계다. 기술은 자연생명을 간섭하고 통제하는 것이다. 생명과 지성과 영혼이 돈과 기술의 주인이 되면 돈과 기술이 아름답고 존귀하게 쓰일 수 있다. 그러나 돈과 기술이 생명과 지성과 영혼 위에서 군림하며 주인노릇을 하면 생명과 정신을 파괴하는 악마의 도구가 된다.

돈은 물질적 가치와 욕망을 담은 말이다. 돈과 기술이 지배하는 도시는 생명을 파괴하고 인성을 황폐하게 만든다. 자본과 기술의 지배는 생명과 인간을 물질의 수준으로 낮은 본능의 수준으로 끌어내린다. 본능적 욕망은 현재의 순간에 충실하고 파충류의 뇌신경세포서 잘 드러난다. 파충류는 식욕과 성욕에 충실하게 산다. 포유류는 감정과 기억이 발달했다. 과거에 충실하다. 과거와 현재를 결합시켜 대응한다. 포유류는 과거의 기억에 따라 반복하는 삶에 익숙하다. 인간의 뇌는 과거와 현재를 통합해서 미래를 예측하고 대처하고 형성한다. 인간은 미래를 계획하고 창조하는 존재다. 돈과 기술과 욕망이 지배하면 인간의 지성과 영성은 파충류의 본능, 물질과 기계에 예속된다. 돈과 기계와 본능의 지배는 사람의 본성을 파괴한다.

이제껏 산업도시들은 자연생명을 파괴하고 인간정신을 황폐케 하면서 발달했다. 이것은 생명진화의 역사를 거스르는 것이고 인간정신의 역사를 가로막고 인간의 정신을 본능과 물질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것이다. 자본과 기술이 지배하는 산업도시는 생명을 말살하고 인간성을 고갈시키고 공동체를 파괴한다. 사람이 돈과 기계(기술)와 본능(탐욕과 섹스)에 예속되면 사람은 본성을 잃고 실성(失性)하여 정신분열과 파탄에 빠진다. 오늘 우리 사회는 실성한 사람, 미친 사람이 참으로 많은 사회다.

돈과 기술은 껍질이고 생명과 정신은 알맹이다. 돈과 물질, 기술과 기계는 생명과 정신을 위해 쓰이는 도구적인 것이다. 생명이 물질보다 기술과 기계보다 더 존귀하고 값진 것이다. 정신과 영혼이 자연만물보다 더욱 존귀하고 높은 것이다. 돈과 기술이 생명과 정신을 지배하지 않고 생명과 정신을 위해서 생명의 본성과 목적을 위해서 쓰일 때 돈과 기술도 존귀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의 찬란한 물질문명은 돈과 기술과 본능적 욕망이 결합하여 펼쳐내는 것이다. 아무리 찬란하고 눈부신 물질문명을 만들어내도 돈과 기술이 지배하는 도시는 생명이 고갈되고 정신이 파괴되는 죽임의 도시다. 생명도시가 되려면 돈과 기술을 바로 써야 한다. 돈과 기술이 생명과 정신을 위해 바로 쓰일 때 생명진화가 완성되고 생명도시가 실현된다. 생명도시가 되려면 물질과 기술, 생명과 정신에 대한 바른 생명철학을 확립해야 한다.

 

3 인성(人性)교육

1) 씨알의 자존감과 사명

인성교육은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사람의 본성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고 자존감을 가지고 본성에 따라 살게 하는 것이다.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 우주역사의 초기에 별들이 태어날 때 생성된 원소들이 그대로 사람 몸 속에 있다. 그래서 천문물리학자들은 사람의 몸에는 우주의 나이테가 있다고 한다. 38억년 생명진화의 역사가 사람 몸의 유전자 속에 압축되어 있고 마음에는 2백만년 인류역사가 새겨져 있고 5천년 민족국가의 역사가 살아 있다. 이것은 오늘날 과학자들이 밝혀주는 진실이다. 사람의 몸과 맘에는 영원한 신적 생명의 불씨가 불타고 있다. 사람은 우주의 씨알, 자연생명의 씨알 인류역사의 씨알 민족국가의 씨알이다. 사람은 영원한 신적 생명의 씨알이다. 이것은 과학자들이 밝혀준 진실이며 기축시대의 성현들이 가르친 진리다. 사람은 우주보다 높고 깊은 존재이고 국가보다 크고 존귀한 존재다. 사람은 개체의 씨알 속에 전체를 품고 있다.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고 사람의 사명과 천명을 다 해야 한다. 사람은 38억년 진화한 생명나무 꼭대기에 핀 꽃이고 열매다. 사람이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고 사람답게 살 때 생명진화의 역사를 완성하고 생명의 본성과 목적을 실현할 수 있으며 돈과 기술의 주인이 되어서 생명도시를 실현할 수 있다. 생명도시를 이루는 지름길은 사람이 본성을 따라서 사람답게 사는 것이다. 사람은 개체의 주체를 실현하고 완성해야 하며 전체의 생명을 드러내고 완성해야 한다. 주체의 깊이와 자유에서 전체의 하나 됨에 이르러야 한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을 실현하고 완성하며 하늘의 뜻과 명령을 실현하는 것이다.

38억년 생명진화과정에서 형성된 사람의 본성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새로 자라는 것이며 더 높고 깊고 커지는 것이다. 그것은 늘 씨알처럼 깨지고 죽음으로써 새 생명을 낳는 것이고 현재의 상태에서 솟아올라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인성교육은 주어진 본성을 자연 그대로 드러내고 지키는 것도 아니고 닦고 씻어서만 되는 것도 아니다. 씨알이 깨지고 죽어서 새 생명의 활동을 하듯이 욕심과 감정과 편견에 물든 자아가 깨지고 죽어서 새로운 나를 낳아야 하는 것이다. 생명의 본성과 사명은 더 나은 새 생명을 낳는 것이다. 인성교육은 낡고 거짓된 나를 깨트리고 죽어서 보다 깊고 큰 나를 낳는 것이고 참되고 아름다운 나, 참된 주체와 전체의 나를 만드는 것이다.

2) 몸성히 맘 놓아 얼(뜻)태워

주체와 전체를 통합하는 사람의 본성, 인성은 세 가지 차원을 가지고 있다. 사람의 사람다운 것이 무엇인가? 사람에게는 몸의 본능, 맘의 감성과 지성, 얼의 영성이 있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인간과 사회가 세 부분으로 이루어졌다고 보았다. 본능적 탐욕, 감정적 용기, 이성적 지혜, 다시 말해 본능과 감정과 이성 세 부분으로 인간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국가사회도 육체노동자들은 본능적 탐욕으로 움직이고 군인들은 용기로 움직이고 철인 왕은 이성에 따라 움직인다고 보았다. 생명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몸, 맘, 얼은 사람의 한 부분이 아니다. 몸은 몸대로 사람 전체를 나타내고 맘은 맘대로 사람 전체를 나타내고 얼은 얼대로 사람 전체를 나타낸다. 몸, 맘, 얼은 서로 다른 차원에서 사람을 전체로 나타낸다. 몸은 단순히 육체가 아니다. 몸은 맘을 담은 것이고 얼과 신이 깃든 것이다. 몸도 신령한 것일 수 있다. 맘도 몸과 얼이 만나는 자리다. 얼도 몸과 맘에 깃드는 것이다.

몸은 몸대로 온전히 성하고 맘은 맘대로 온전히 편하고 자유로워야 하며 얼은 얼대로 힘차게 솟아올라야 한다. 인성교육의 첫째는 몸이 성하게 하는 것이며 둘째는 맘이 놓이게 하는 것이고 셋째는 얼과 뜻이 불타오르게 하는 것이다. 몸이 건강하고 성해야 맘이 놓이고 자유롭다. 또 맘이 놓이고 자유로워야 몸이 성하고 건강하다. 몸이 성하고 맘이 자유로우면 얼과 뜻이 힘차게 솟아오른다. 사람은 얼이 힘 있게 솟아오르고 뜻이 불타야 사람 구실을 한다. 몸이 성하고 맘이 놓이고 얼과 뜻이 힘차게 불타오르게 하는 것이 인성교육의 목표다.

사람은 몸이 성하고 맘이 턱 놓여서 자유로워야 한다. 스트레스로 화로 병이 들어서 몸과 맘이 성하고 자유로운 이를 찾기 어렵다. 화가 잔뜩 나고 독이 잔뜩 올라서 곧 시한폭탄처럼 터지기 직전의 사람들처럼 맘이 사납고 막혀 있다. 이렇게 된 것은 사람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모르고 돈과 물질, 기술과 기계의 종살이를 하기 때문이다. 식욕과 성욕에만 충실하면 파충류인 뱀과 다를 게 없다. 사람은 감성과 지성과 영성을 가진 존재가 아닌가? 돈과 기술의 종살이를 하면서 식욕과 성욕만 자극하면 사람은 본성을 잃고 실성(失性)하여 미치고 만다. 실성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사람의 본성을 살리려면 감성과 지성과 영성을 살려내야 한다. 몸성히 맘놓아 얼 태우는 삶을 살아야 한다. 몸이 성하고 맘이 놓이고 뜻을 태워 살려면 알맞게 먹고 알맞게 일하고 알맞게 살아야 한다. 지나치게 많이 먹거나 적게 먹으니까 몸성히가 안 된다.

3) 사랑의 맘: 주체와 전체의 자리

생명의 본성은 끊임없이 자라고 새로워지고 더 깊고 높아지는 것이다. 몸은 맘의 껍질이고 맘은 얼의 껍질이다. 껍질을 깨고 알맹이를 살려야 한다. 껍질이 깨지고 터져서 새 생명이 피어나게 하고 새 생명을 낳게 하는 것이 인성교육이다. 몸을 딛고 맘이 깨어나야 하고 맘을 이기고 얼이 솟아나야 한다. 늘 깨지고 터지고 피어나는 것이다. 생물학자들은 생명진화 과정에서 죽음이 발명되었다고 한다. 생명은 죽음을 통해서 진화하고 발전했다. 개체의 죽음을 통해서 전체 생명이 진화하고 고양된 것이다. 씨알은 깨지고 죽음으로써 새 생명을 낳는 존재다. 모든 생명체는 씨알을 통해서 더 나은 생명체를 낳자는 것이다. 지식과 정보는 복사할 수 있으나 생명과 정신은 복사할 수 없다. 물건과 기계는 복제할 수 있으나 생명과 정신은 복제할 수 없다. 생명과 정신은 보다 나은 생명과 정신을 낳는 존재이며 늘 새롭게 더 나은 생명과 정신으로 되는 존재다. 물건과 기계는 새 물건과 기계를 낳을 수 없다. 생명과 정신은 주체와 전체를 지닌 새 생명과 정신을 낳아야 한다.

사람의 본성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그것은 인(仁), 사랑, 정의, 자비, 참이다. 솟아올라 나아감이 생과 인간의 본성이다. 사람의 본성 인성(人性)은 인성(仁性)이다. 복숭아씨를 도인(桃仁)이라 하고 은행씨를 행인(杏仁)이라 한다. 사람 속의 씨알맹이도 인(仁)이다. 인(仁)은 생명의 주체와 전체를 사랑하고 실현하는 것이며 생명을 영원히 이어가는 것이다.

생명의 본성과 목적은 주체와 전체를 실현하고 완성하는데 있다. 인간은 38억년 생명진화 끝에 하늘을 향해 직립한 존재다. 하늘을 본받고 하늘과 사귀는 존재다. 하늘은 주체의 깊이와 자유에서 전체의 하나 됨에 이르는 자리다. 하늘을 우러르며 하늘을 그리워하고 사는 인간은 주체의 자유와 전체의 하나 됨을 열망한다. 사람의 맘과 하늘의 맘이 하나로 통해 있다. 하늘과 하나로 통한 맘이 인(仁)이고 아가페 사랑, 자비와 정의이고 참과 진리다. 그것이 하늘의 맘이고 전체의 맘이고 인간 본성의 맘이다. 그것이 주체가 더 깊어지고 전체가 하나로 되는 자리이며 주체와 전체를 기르고 키우고 살리는 자리이고 주체와 전체의 생명을 낳는 자리다.

사람은 자신의 주체와 전체를 보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누구인지 깨닫고 자존감을 가져야 한다. 사람은 남을 주체와 전체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인성교육은 자신과 남의 주체와 전체를 보게 하는 것이다. 주체의 자리, 전체의 자리서 보고 느끼고 행동해야 한다. 인성, 인(仁)의 자리가 하늘의 자리이며 공(公)의 자리이며 주체와 전체의 자리다. 인의 맘, 하늘의 맘, 생명사랑의 맘으로 보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을 길러야 한다. 인성교육은 인간의 제 본성을 실현하는 것이니 스스로 깨닫고 행해야 한다.

 

4 인성교육과 생명도시의 실현

인성 교육

교육은 생명을 살리는 것이다. 생명 가운데 생명인 인성을 살리려면 하늘의 자유 빈탕에 이르러야 한다. 제정구의 말대로 가짐 없는 큰 자유를 누려야 한다. 가짐 없는 큰 자유는 하늘의 자유다. 거기서 인성 (仁性)을 기를 수 있다. 주체와 전체를 볼 수 있고 실현할 수 있다. 한민족 한겨레는 하늘을 열고 나라를 세웠다. 한민족 한겨레의 ‘한’은 큰 하나 전체를 나타내고 하늘을 나타낸다. 우리는 하늘을 품고 그리고 우러르며 사는 민족이다. ‘한’은 하늘의 자유, 가짐 없는 큰 자유다. ‘한’은 주체의 자리이고 전체의 자리다. 생명을 살리고 키우는 자리다. 하늘의 빈탕한데 허공이 가짐 없는 큰 자유의 자리가 생명의 주체와 전체를 살리고 인성을 교육하고 생명도시를 실현하는 자리다.

인성교육은 사람마다 지니고 있는 하늘의 마음, 사랑의 마음을 일깨우고 사랑의 마음으로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게 하는 것이다. 사랑의 마음은 생명의 주체와 전체를 드러내고 실현하는 마음이다. 하늘의 마음이고 공의 마음이다. 생명 사랑의 맘, 하늘의 맘, 공의 맘을 가지고 생명의 주체와 전체를 기르고 키우고 살리는 사람, 주체와 전체의 생명과 정신을 낳는 사람을 길러내는 것이 인성교육이다. 한민족은 오랜 세월 ‘한’의 심정과 자리를 품고 살았다. 한민족은 한의 마음, 하늘의 마음, 생명사랑의 마음, 공의 심정을 지닌 민족이다. 인성교육을 하고 생명도시를 실현할 자격과 준비를 갖춘 민족이다.

생명도시의 실현

1) 생명의 깊이와 아름다움

생명도시가 되려면 모든 것을 주체와 전체로 보아야 한다. 사람의 감각과 이성은 부분과 표면만 볼 뿐 주체의 깊이와 전체를 볼 수 없다. 하늘의 맘, 사랑의 맘으로만 주체와 전체를 볼 수 있다. 모든 것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고 생명의 빛을 드러내는 것이다. 생명의 깊이와 아름다움과 신비를 드러내고 실현하는 것이다. 생명의 인정(仁情)과 존귀를 드러내고 실현하는 것이다. 모든 물질과 제도, 건물과 도로에도 존재의 깊이와 아름다움, 고유함과 높이가 있다. 모든 것을 주체로 그것을 그것답게 드러내고 실현하는 것은 생명사랑으로 보고 만들고 누리는 것이다.

어진 맘으로 보면 모든 것을 주체와 전체로 보면 아름다운 생명도시가 실현될 수 있다. 사랑의 맘으로 볼 때 비로소 주체와 전체가 드러난다. 쓰레기 조각도 그것을 그 나름의 고유한 존재에서 그 깊이에서 그리고 전체와의 관련에서 보면 아름답고 존귀한 것이 될 수 있다. 때와 순간, 장소와 공간, 일과 물건도 모두 생명의 관점에서 주체와 전체의 자리에서 보면 위대하고 거룩한 생명의 씨알이 될 수 있다. 거기서 위대하고 존귀한 생명의 싹이 트고 꽃과 열매가 맺을 수 있다.

2) 자치와 협동의 생명공동체

생명의 본성과 목적은 주체의 깊이와 자유에서 전체의 하나 됨에 이르는 것이다. 주체의 깊이와 자유에서 전체의 하나 됨에 이르려면 사람은 마땅히 서로 주체로서 자치와 협동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야 한다. 생명도시는 자치와 협동의 공동체도시다. 생명도시를 실현하려면 자치와 협동의 공동체 조직을 확산해야 한다.

오늘 한국 정치경제의 근본 문제는 국민 대다수가 정치와 경제에서 소외되고 있는 것이다. 돈은 사회의 피와 같은 것인데 골고루 돌지 않고 재벌기업과 일부 사람에게만 몰려 있고 많은 사람들은 돈과 일자리 부족에 시달린다. 갈수록 사회의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 오늘 국회와 정당과 정부 관료는 국민의 뜻을 대변하지도 실행하지도 못하고 있다. 세월호 사건에서 보듯이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돌보는 정부의 무능력과 비효율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와 있다.

오늘 한국 정치경제의 근본 위기는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며 더 이상 대의민주제로는 21세기의 정치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헌법전문에서 밝힌 대로 국민주권과 민주공화정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서 자치와 협동의 직접민주주의를 강화해야 한다. 헌법전문에 따르면 국민은 헌법제정권자이고 국가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오늘 한국에서 국민의 뜻은 법제정에서 반영되지 못하고 있으며 국민은 정치와 경제에서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 ‘민주공화정’에서 민주는 민이 국가의 주인과 주체라는 말이고 공화정은 국민이 서로 주체로서 함께 뜻을 모아서 평화롭고 조화롭게 나라를 이끌어간다는 말이다. 정치와 경제에서 민이 소외되고 있는데 민주공화정이란 말은 공허한 이념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은 삼일운동에서 국민 전체가 떨쳐 일어나 나라의 주인과 주체로서 나라의 독립과 주권을 선언한 운동이다. 삼일운동 직후에 세워진 임시정부 이래 한국은 민주공화정의 이념을 분명하게 제시하였다. 삼일운동의 정신과 민주공화정의 이념을 실현하려면 자치와 협동의 공동체를 마을마다 동네마다 만들고 읍면동의 차원에서 지역자치를 실현해야 한다. 생산과 유통과 소비의 모든 과정에서 자치와 협동의 공동체 조직이 확대되어야 한다. 직접민주주의가 든든히 확립될 때 간접민주주의인 대의민주주의도 건전하게 제 구실을 할 수 있다.

생명의 도시 시흥에서 삼일운동과 헌법전문의 정신과 철학을 실현함으로써 자치와 협동의 생명공동체 도시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박재순  p9944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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