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신문 ‘미래공창’과 박재순 회장의 인터뷰

박재순l승인2015.05.03l수정2015.05.06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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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 오후 3시에 프레지덴트 호텔 커피숍에서 일본에서 온 김태창 박사와 미래공창(未來共創) 신문 키요시 야마모토 편집장, 유기농 사업을 하는 게니치 시오자와 사장을 만났다. 한국양명학을 연구한 정인재 교수도 함께 했다. ‘미래공창’에 한국철학을 소개하는데 ‘유영모의 철학’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달라는 것이었다. 김박사의 통역으로 2시간쯤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다석의 철학을 한 마디로 말해달라고 해서 “솟아올라 앞으로 나아감”이라고 했고 솟아오름은 내적 초월을 뜻하고 앞으로 나아감은 역사의 진보를 뜻한다고 하였다. 솟아올라 나아가는 동력은 어디서 얻느냐고 물어서 인간의 생명 속에 본성 속에 동력이 있다고 하였다. 생명진화의 역사 자체가 솟아올라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이었고 생명 속에는 솟아올라 나아가는 큰 힘이 있고 상생과 공존의 힘과 지혜가 들어 있다고 하였다. 어떻게 그 힘을 얻느냐고 해서 생각으로 인간의 내적 본성을 파고들어서 껍질을 깨서 그 힘을 얻는다고 하였다.

깨지고 죽음으로써만 생명은 솟아올라 나아갈 수 있다고 하였다. 다석의 씨알사상은 깨지고 죽음을 강조한다는 것을 말했다. 그랬더니 죽음을 두려워하는 보통 사람에게 어떻게 죽음을 말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개체의 죽음을 통해서 생명의 진화가 이루어졌다. 박테리아와 곰팡이는 죽지 않을 수 있었지만 진화할 수 없었다. 씨알은 개체의 죽음을 통해서 전체의 생명이 진화함을 나타낸다. 죽음은 선택의 여지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므로 청소년들에게도 죽음의 진리와 사실에 대해서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죽음을 통해서 변화가 이루어진 사례가 있느냐고 물어서 한국에서는 특별히 죽은 사람을 존중하고 죽음 앞에 겸허한 전통이 있다고 하였다. 삼일운동, 4·19혁명, 전태일 사건 등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죽음을 계기로 죽은 자에 대한 존중과 연대를 통해서 일어났다.

씨알사상이 개체와 전체의 일치를 강조하는데 화엄경에서 말하는 개체와 전체의 일치 사상과 어떻게 다른가 물었다. 씨알사상은 개체 속에서 전체를 보고 전체 속에서 개체를 보지만 단순히 천인합일, 범아일여의 사상에 머물지 않는다. 씨알이 깨지고 죽음으로써 전체 생명의 꽃과 열매를 맺듯이 개체가 깨지고 죽음으로써 인간의 본성이 깨지고 죽는 과정을 통해서 개체와 전체의 일치에 이른다.

게니치 시와자와 선생이 한국에 좋은 사상과 운동이 있는데 왜 서로 연대하고 통일하지 않는가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민중이 서로 연대하고 협력하는 길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물었다. 서로 약한 상태에서 운동을 시작하고 있으므로 서로 신뢰가 쌓이고 힘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연대하고 일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한중일 사이에 연대와 협력의 길을 넓혀 가려면 낡은 국가주의에서 벗어나 국가를 초월하는 정신과 실천이 요구된다고 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낡은 국가에 대한 애국심과 동포애까지 버릴 수 있어야 하며 한 사람이 한국인이면서 일본인이 되고 일본인이면서 한국인이 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한 사람이 2국적 3국적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10여년 전에 하토야마와 오자와가 이끈 민주당 정부가 탈미입아(脫美入亞)와 아시아적 우애와 협동의 공동체를 내세웠을 때 크게 고무 되었고 21세기의 새로운 미래를 일본이 주도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너무 쉽게 민주당 정부가 정권을 잃어서 아쉬웠다. 일본 민주당 정부가 내세운 정치적 이념과 방향은 21세기 동아시아의 미래를 열어주는 옳은 이념과 방향이었다. 결국 그 길로 갈 것이라고 했다.

초국적인 생명운동은 지성의 차원을 넘어서 영성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에 모두 공감했다. 서구의 이성철학은 말할 것도 없고 주자의 성리학도 이학(理學)적인 성격을 가졌으며 양명학도 양지(良知)를 말함으로써 지성의 차원에 머물렀다. 하늘의 빔과 얼을 말하지 못했다. 나는 다석의 사상이 격물치지(格物致知)에 대한 대학과 주자의 논의를 비판적으로 극복하고 하늘의 빈탕과 얼에 대한 논의로 나아갔음을 역설하였다. 다석은 1956년 12월 28일 연경반 강의에서 ‘대학(大學)’을 강의하였다. 이 때 격물치지를 비롯한 ‘대학’의 강의를 하면서 아쉽고 부족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물질과 생명을 아무리 탐구해도 온전히 다 알 수는 없다. 모르는 차원이 있기 마련이다. 또 온전히 안다고 해도 온전한 지식이 나를 살릴 수 없고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생각을 깊게 하기 위해서 한 달 동안 강의를 중지할 것을 선언하고 다석은 금식하며 생각을 깊이 했다. 한 달 후 강의에서 ‘간디의 진리파지(眞理把持)’에 대해 말하면서 간디를 기념할 것이 아니라 간디의 살과 피를 먹고 간디처럼 살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내’가 살고 세상을 바꾸고 살게 하려면 온전한 지식에 이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면서 예수, 간디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한다고 했던 것이다.

다석은 다시 한 달 동안 강의를 쉬면서 생각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나서 1957년 3월 8일 강의에서 ‘빈탕한데 맞혀놀이’(與空配享)에 대한 강의를 했다. 하늘의 빈탕한데에 이르러 하늘과 사귀며 놀이하듯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석이 주희의 성리학과 왕양명의 양명학을 넘어서 서양의 이성철학을 넘어서 하늘의 공과 무의 세계에서 하늘과 사귀는 얼과 신의 철학에 이르렀음을 말해준다. 얼의 나가 되어 하늘 빈탕한데의 자유에 이를 때 비로소 나의 맘은 맘대로 자유롭고 물질세계와 몸은 물성과 이치에 따라 실현되고 완성된다고 하였다. 그는 격물치지를 물질세계를 깊이 탐구하여 내가 온전한 지식에 이른다는 의미로 해석하지 않고, 하늘의 빈탕한데 이르러 물질세계를 본성과 이치에 따라 바르게 실현하고 완성하며, 나의 삶과 맘이 온전한 자유에 이르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다석의 사상에 대해서 일본인들은 깊은 공감과 존경을 표시했다. 야마모토 편집장은 600년대에 고구려의 한 스님이 일본에 불경과 불교사상을 전해 주었고 이것을 바탕으로 일본이 나라를 세울 수 있었다면서 오늘의 가르침이 일본에서 나라를 새로 세우는 바탕이 되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박재순  p9944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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